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-파키스탄 관계 (문단 편집) === 20세기 === 소련은 파키스탄이 [[영국]]에서 독립한 후 서로 수교를 맺었다. 그러나 명목상의 수교 외에는 소련이 [[공산주의]] 국가로서 [[국가 무신론]]정책을 펼친 것과 미국에서 파키스탄의 [[페샤와르]] 공군 기지 이용을 대가로 막대한 원조금을 제시하는 바람에 파키스탄측에서 거리를 두었다. 당시에는 아직 투르키스탄 5개국([[투르크메니스탄]], [[우즈베키스탄]], [[카자흐스탄]], [[키르기스스탄]], [[타지키스탄]])이 소련에서 독립하기 전이었고, 미국 공군이 해당 지역을 타격할 군사 요충지로 페샤와르가 꼽혔기 때문이다. 1958년 집권한 아유브 칸 정권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밀당을 반복하는 외교 정책을 벌였다. 다만 1965년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Indo-Pakistani_War_of_1965|제2차 인도-파키스탄 전쟁]]에서는 소련의 주선 하에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이 정전 협정을 맺기도 했다. 이후 [[이슬람 사회주의]] 성향의 줄피카르 알리 부토가 파키스탄의 지도자가 되면서 소련과 파키스탄의 우호관계는 잠시나마 증진되었다. 부토 정권은 1972년 소련의 지원 하에 카라치에 제철소를 건설하였다. 그러나 양국의 관계 개선도 잠시 1977년 [[무함마드 지아울하크]]의 쿠데타로 부토의 [[파키스탄 인민당]] 정권이 붕괴되면서 양국의 관계는 다시 냉각되었다.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여 [[소련-아프가니스탄 전쟁]]이 발발하자 미국은 소련 견제를 위해 [[무자헤딘]]을 지원한다. 이 과정에서 미국은 파키스탄을 무자헤딘 지원 협력 파트너로 삼고 파키스탄의 [[ISI]]는 미국 [[CIA]]와 협조하에 반소 무자헤딘들을 지원하였다.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인 무자헤딘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자국의 영향력 증대를 꾀했다. 당시 파키스탄은 친중 국가였으나, 중국과 소련은 서로 국경 분쟁 등으로 사이가 벌어진 상황이었고 파키스탄은 [[미국]] 외에도 [[중국]]과 협력하면서 반소 무자헤딘들을 지원하였다. 당시 파키스탄이 주로 지원한 것은 [[이슬람 근본주의]] 성향의 막장으로 유명했던 [[헤크마티아르]] 군벌이었고, 그 헤크마티아르 군벌은 탈레반에 흡수되었다. 소련-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종료되고 90년대에 파키스탄은 [[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]]과 수교/지원한 반면, 러시아는 파키스탄을 견제하기 위해 [[아프가니스탄 구국 이슬람 통일 전선|북부동맹]]을 지원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